인공지능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글로벌 파운드리 산업의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8인치 파운드리 공장 일부를 폐쇄하고 12인치 첨단 공정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동시에 차세대 메모리 기술인 HBF(고대역폭 플래시)가 HBM의 뒤를 잇는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으며, TSMC는 3나노 공정의 생산 능력 한계로 고객들을 밀어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시장 조정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 전체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8인치 파운드리 축소와 DB하이텍의 기회
삼성전자가 경기 기흥에 위치한 8인치 파운드리 공장 가운데 하나인 S7 라인을 올해 하반기 중 폐쇄할 예정입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기흥에 S6, S7, S8 등 8인치 공장 세 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S7 라인이 폐쇄되면 삼성전자의 8인치 월 생산 능력은 기존 약 25만 장에서 20만 장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S7의 월 생산 능력은 약 5만 장 수준으로 추정되며, 고객 물량 이관 작업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삼성전자만의 선택이 아닙니다. 대만의 TSMC 역시 지난해부터 8인치 공장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으며, 일부 라인은 내년까지 완전 폐쇄할 계획입니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글로벌 8인치 파운드리 생산 능력이 전년 대비 2.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과거 8인치에서 주력으로 생산되던 CMOS 이미지 센서와 디스플레이 구동칩 등이 점차 12인치 공정으로 이동하면서 가동률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공급은 줄어들고 있지만 수요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 서버 확산으로 전력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8인치 공정이 필요한 제품군의 주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 세계 8인치 반도체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지난해 75
80% 수준에서 올해는 85
90%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부 업체들은 8인치 제품 가격을 5~20%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 국내 파운드리 업체 DB하이텍이 반사 이익을 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DB하이텍은 현재 공장을 거의 풀가동 중이고 주문량이 많아서 신규 수주를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 지금 당장 매수를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단기적인 매수세가 과도하게 들어온 상태에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인건비 상승 또한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경쟁 환경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만의 뱅가드와 UMC, 중국의 SMIC, 이스라엘 타워 재즈 등이 8인치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의 SMIC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물량 확대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HBF 부상과 AI 메모리 구조의 재편
인공지능 연산이 훈련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메모리 구조 자체가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HBM의 뒤를 이을 차세대 메모리로 고대역폭 플래시 HBF가 본격 부상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HBM의 개념을 만든 인물로 알려진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이르면 2027년 말에서 2028년 초 엔비디아 GPU에 HBF가 실제 적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삼성전자와 샌디스크, 엔비디아, AMD, 구글 등이 제품에 HBF를 탑재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는 설명입니다.
HBF의 본격 확산 시점은 HBM6 전후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HBM6부터는 하나의 메모리 스택이 아니라 여러 개의 메모리 스택을 단지처럼 연결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과정에서 디램 기반 HBM은 용량 한계에 직면하고, 낸드를 적용한 HBF가 그 빈자리를 메우게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영역이 AI 추론입니다. 현재 GPU는 추론 과정에서 먼저 HBM에서 데이터를 불러오고 연산을 거쳐 결과를 출력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김교수는 이 역할을 앞으로 HBF가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HBM은 속도 면에서 강점이 있지만 HBF는 용량이 약 10배에 달합니다. 대규모 모델을 장시간 추론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속도보다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옆에 두고 처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진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구조적 차이도 분명합니다. HBF는 읽기 횟수에는 제한이 없지만 쓰기 횟수에는 약 10만 회 수준으로 제한됩니다. 이 때문에 OpenAI나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읽기 중심 구조에 맞춰서 모델과 시스템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전제도 따릅니다.
성능 전망도 기존 저장 장치와 차원이 다릅니다. 업계에 따르면 HBF의 대역폭은 초당 1,638GB 이상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NVMe PCIe 4.0 연산 기반 SSD가 제공하는 초당 약 7,000MB 수준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용량 역시 최대 512GB까지 가능해 HBM4의 64GB를 크게 웃돌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메모리 업체들도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달 중 HBF 시제품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와 함께 HBF 표준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고 현재는 공동 컨소시엄 형태로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양산은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TSMC 3나노 병목과 파운드리 시장 재편
인공지능 수요가 폭발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가열되고 있습니다. 특히 초미세 공정 영역에서는 주문이 생산 능력을 앞지르며 시장 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만 최대 파운드리 TSMC는 최근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독일계 투자 은행은 이를 두고 전형적인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3나노 공정 생산 능력이 전례없이 빠듯해졌습니다. 주문은 이미 2027년을 넘어 이어지고 있으며 사실상 추가 물량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근접했다는 진단입니다. 이에 따라 TSMC는 2026년 설비 투자 계획을 대폭 상향했습니다. 기존 시장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인공지능 수요 확대 국면에서 과거 투자 판단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이번 병목은 단순히 첨단 패키징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핵심은 반도체를 실제로 찍어내는 웨이퍼 생산 능력 자체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입니다. 특히 3나노 공정은 생산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도 고객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같은 공급 압박은 고객 전략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애플,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퀄컴, 미디어텍 등 주요 고객사들이 대안 파운드리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겼습니다.
그 결과 초미세 공정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이 현재보다 소폭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다만 이는 기술적 경쟁력 악화가 아니라 물리적인 생산 능력 한계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과정에서 삼성 파운드리가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미국 타일러 공장을 중심으로 추가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습니다. 반면 애플과 브로드컴은 인텔 파운드리도 검토 중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인텔의 차세대 공정은 대규모 양산까지 넘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는 평가입니다.
TSMC 역시 전략 조정에 나섰습니다. 일부 3나노 신규 프로젝트를 늦추는 대신 고객들에게 2027년 이후 물량을 2나노 공정으로 앞당겨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생산 능력 조정 부담이 커졌지만, 독일계 투자 은행은 중장기 전망에 대해서 여전히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했습니다. 인공지능 수요의 구조적 성장과 가격 결정력 강화를 근거로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촉발한 초미세 공정 경쟁은 기술 싸움을 넘어 누가 더 많이 빨리 만들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은 8인치 축소, HBF 부상, 3나노 병목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변화를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DB하이텍과 같은 8인치 업체들에게는 단기적 기회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12인치 첨단 공정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합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단기 과열을 경계하면서도 구조적 변화의 수혜 기업을 선별하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라는 현실적 부담을 고려할 때, 지금은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국면입니다.
[출처]
삼성 12인치 파운드리 '올인' DB하이텍 8인치 '풀가동' / 칩인사이드: https://www.youtube.com/watch?v=YwVdQnztW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