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래된 필름의 질감과 화면 속 배우들의 움직임은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시대를 초월한 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룡이 주연한 1978년 영화 ‘취권’은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단지 한 세대의 향수로만 소비되는 고전이 아니라, 지금 봐도 여전히 신선한 감각과 구조를 지닌 영화로 평가됩니다. 특히 이 영화는 성룡이라는 배우의 정체성을 굳힌 결정적인 계기이자, 홍콩 무술 영화가 전 세계 영화시장에 뚜렷한 인상을 남긴 대표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어렸을때 추석 명절만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성룡의 취권입니다. 당시 큰 인지도가 없었던 성룡을 단 한순간에 톱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준 명작입니다. 이 영화는 아시아 뿐만아니라 서양에서까지 큰 주목을 받으며 젝키찬이라는 인물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취권’은 성룡이 보여준 액션의 새로운 방향성, 그리고 무술과 유머의 절묘한 조합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 무술 영화가 단순히 싸움 장면만 나열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액션 그 자체가 스토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금 다시 ‘성룡 취권’을 재조명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무술적 정교함과 감정적 서사, 그리고 세계 영화사 속 의미 있는 흐름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콩액션의 진수를 담아낸 ‘취권’
‘취권’이 개봉하던 1970년대 말은 홍콩 영화계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무협, 액션,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가 시도되었고, 그 중심에는 무술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무술 영화들은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성룡은 이러한 흐름을 과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유머와 과장된 표정, 그리고 민첩하고 유려한 동작을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새로운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품이 바로 ‘취권’입니다.
‘취권’은 전통 중국 무술 중 하나인 취권(醉拳)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동작이 특징인 이 무술은 겉보기에는 어설퍼 보이지만, 실전에서는 상대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드는 기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룡은 이 무술의 특징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면서도, 액션 장면에서는 리얼한 동작과 속도감으로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특히 나무 장작을 이용한 훈련 장면이나, 의자와 테이블을 활용한 전투 장면은 실제로도 고난도의 안무가 필요한 시퀀스였으며, 관객에게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또한, ‘취권’의 촬영기법도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느린 장면 전환 없이 이어지는 롱테이크 액션, 배우의 동작이 끊기지 않도록 배치된 카메라 앵글, 소리를 최소화한 채 동작 자체로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 등이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매우 세련된 구성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종합되어 ‘취권’은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 홍콩 액션 영화의 미학과 철학을 담은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명장면을 만들어낸 스토리와 캐릭터의 조화
‘취권’의 인기를 단순히 액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잘 짜인 서사 구조와 인물 간의 관계성입니다. 주인공 황비홍은 중국 무술계에서 실제 존재했던 인물을 각색한 캐릭터로, 정의감은 있지만 철없고 고집 센 성격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철부지 청년에서, 자신만의 신념과 기술을 갖춘 무술가로 성장해 나갑니다.
그 성장의 과정은 단순한 훈련으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영화 속 사부 소화상과의 관계는 웃음과 갈등, 감동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소화상은 얼핏 보기에 괴짜 노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내공과 애정이 숨어있습니다. 그는 황비홍을 혹독하게 훈련시키지만, 동시에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며 수련하는 장면이나, 훈련 중 실수를 통해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과정은 단순한 무술 수업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결투 장면은 그 모든 감정이 응축된 순간입니다. 황비홍이 취권의 진수를 깨우치고, 이를 활용해 강력한 적을 상대하는 이 장면은 단지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캐릭터의 성장, 스토리의 흐름, 관객의 감정까지 완벽하게 연결되는 구성입니다.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고, 배우의 표정과 호흡, 심지어 카메라의 움직임까지 모두가 하나의 리듬을 이루며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이러한 서사적 완성도는 단순한 액션 영화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며, ‘취권’이 단지 옛날 영화로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명장면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인물 이해와 이야기 속 맥락에서 탄생한다는 점을 ‘취권’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행수익으로 증명된 세계적 영향력
‘취권’은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당시 홍콩 내에서 약 650만 홍콩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며, 연간 최고 흥행작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단지 홍콩 내 성공에 그치지 않고, 대만, 일본,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과 유럽 등 다양한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성룡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숨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액션스타로 떠올랐고, 이후 헐리우드 진출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서구권에서의 반응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당시에는 동양 무술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던 서구 사회에서, 성룡의 코믹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액션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기존의 무술 영화가 보여주지 못했던 ‘재미’와 ‘에너지’가 가미되면서, 성룡의 스타일은 곧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취권은 그 브랜드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비디오 테이프와 케이블 방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일부 장면은 방송 프로그램이나 광고, 뮤직비디오 등에도 활용되면서 문화적인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단지 수익이 높았다는 것을 넘어, 이후 많은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홍콩뿐 아니라 한국, 일본, 심지어 헐리우드에서도 ‘취권’의 영향력을 언급한 감독들이 많습니다. 무술 안무, 코미디 연출, 인물 성장 서사 등을 한 작품 안에 균형 있게 담아낸 이 구조는 이후 수많은 액션 영화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또한 성룡이 이 작품에서 직접 스턴트를 소화하고, 부상을 입으면서도 촬영을 지속했다는 사실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으며, 지금의 액션 배우들이 자신들의 롤모델로 성룡을 꼽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취권’은 한 편의 영화가 단지 오락적 소비를 넘어서,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