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다룬 영화는 흔하지만, 한 사람의 내면과 시대, 그리고 그가 속한 철학적 좌표를 동시에 풀어낸 작품은 드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2023년작 《오펜하이머》는 그런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며, 동시에 매우 놀란다운 영화입니다. 영화는 단순히 원자폭탄을 개발한 과학자의 일대기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선택하고 외면했던 순간들, 그의 말이 만들어낸 역사, 그리고 그의 침묵이 남긴 파문까지도 세밀하게 들여다봅니다.
놀란 감독은 이 이야기를 전형적인 ‘영웅 서사’로 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펜하이머를 ‘영웅인가, 아니면 파괴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위에 세워놓고, 끝까지 판단을 유보합니다. 그의 연출은 시종일관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미지, 시간 구조, 그리고 사운드를 통해 관객 스스로 인물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3시간에 생각보다 너무 긴 런닝타임과 대사중심의 전개는 다소 보는데 부감감을 주었으며 흑백 시선의 촬영스타일은 조금 난해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글에서는 놀란의 연출적 특징과 서사 구성, 그리고 영화계와 평론가들 사이에서의 평가까지 폭넓게 살펴보며, 《오펜하이머》가 단지 하나의 전기영화가 아닌, 시대의 윤리적 아이콘이 된 이유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서사 철학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언제나 ‘시간’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은 모두 시간의 흐름과 구조에 대한 실험이 핵심이었습니다. 《오펜하이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선형적 서사를 따르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흑백과 컬러 화면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그 사이에서 관객은 점차적으로 퍼즐을 맞춰가며, 오펜하이머라는 복잡한 인물을 이해하게 됩니다.
놀란이 의도적으로 시간 구조를 비틀고, 단순한 연대기적 전개를 거부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오펜하이머의 삶은 단일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이자 이상주의자, 동시에 국가의 필요에 의해 ‘폭탄을 만든 자’로 남은 이 남자의 정체성은 단일한 시간선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놀란은 이를 교차 서사를 통해 반영하며, 영화 전반에 걸쳐 ‘이해’보다 ‘사유’를 유도합니다.
여기서 놀란의 철학이 드러납니다. 그는 관객에게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람은 과연 옳은 결정을 했는가?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과학자는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머릿속에 오래 남습니다.
연출의 미학과 이미지의 힘
놀란의 연출은 말보다 이미지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는 시각적 표현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능하며, 《오펜하이머》에서도 이러한 기법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영화 초반, 오펜하이머가 양자역학에 몰두하며 보게 되는 추상적 이미지들은 과학이라는 영역이 결코 건조한 숫자나 이론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에게 과학은 ‘철학’이며 ‘예술’입니다. 놀란은 이러한 감각을 시각화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와 패턴, 빛의 명멸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특히,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장면에서 놀란은 CG를 사용하지 않고, 실제 폭파 장면과 특수 효과를 결합해 원자폭탄 실험의 충격과 장엄함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 이후 이어지는 정적은 놀랍도록 무겁습니다. 모든 사운드가 사라지고, 관객은 오직 오펜하이머의 표정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 정적 속에서 느껴지는 ‘무언의 충격’은 어떤 대사보다도 강한 울림을 남깁니다.
놀란은 이처럼 관객의 감정을 조작하지 않으면서도,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합으로 깊은 감정선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그가 단지 기술적인 감독이 아니라, 감정을 언어화하지 않고도 전달할 줄 아는 연출가임을 보여줍니다.
인물 구축과 인간적 고뇌의 시각화
《오펜하이머》의 진짜 힘은 인물 구축에 있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영웅도 아니고, 악인도 아닙니다. 그는 어느 한 시점에서는 이상주의자였고, 또 다른 시점에서는 정치적 희생양이었으며, 후반에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도리어 짓눌리는 인물이 됩니다. 놀란은 이 복합적인 인물을 단일한 감정으로 요약하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 스스로 그의 감정을 읽어내도록 유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가 바로 ‘청문회’입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오펜하이머의 보안 심사 청문회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청문회는 단순한 서사의 장치가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를 반추하게 만드는 법정입니다. 놀란은 이 장면들을 흑백으로 처리해 객관성과 거리감을 부여하고, 감정의 개입을 차단합니다. 이와 반대로, 오펜하이머 개인의 기억이나 고통스러운 순간은 컬러로 표현되며,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유도합니다.
놀란은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기’보다는 ‘비추는 방식’으로 연출합니다. 이를테면, 오펜하이머가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에서 그가 본 환영, 바닥이 갈라지는 이미지, 사람들의 비명과 환호가 뒤섞이는 환청은 모두 그의 내면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 장면 하나로 그의 심리 상태, 후회, 죄책감, 그리고 두려움이 모두 전해집니다.
놀란 감독에 대한 비평적 평가
놀란의 연출은 종종 이분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한쪽에서는 그의 철학적 접근과 독창적인 시도를 높이 평가하며, 현대 상업영화에서 가장 진지한 감독 중 하나라고 칭합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그의 영화가 ‘감정적으로 건조하다’거나 ‘너무 계산적’이라는 비판을 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이런 평가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입니다. 놀란은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데 성공했고, 동시에 그 접근 방식이 매우 놀란적이기 때문에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감정은 깊지만, 표현은 절제되어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놀란의 연출 전체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놀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도 존재합니다.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군사 프로젝트를 비판하지도,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판단을 관객에게 넘깁니다. 이런 태도는 어떤 이들에게는 신중함으로, 또 어떤 이들에게는 회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놀란이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입니다.